전기요금 또 동결, 그런데 한전 빚은 210조? 고지서 뒤에 숨은 진짜 계산서
안병훈 기자
이번 4분기 전기요금도 동결됐습니다. 고지서 금액이 그대로라니 일단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동결’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가정용은 14분기 연속, 산업용은 8분기 연속 같은 가격이라는데, 그동안 원가는 가만히 있었을까요. 오늘은 고지서 금액 뒤에 어떤 계산이 숨어 있는지 풀어 보겠습니다.
숫자로 보는 동결, 14분기째 이어졌다
이번 결정으로 가정용 전기요금은 14분기 연속, 산업용은 8분기 연속 동결이 됐습니다. 기본 요금 체계가 바뀌지 않았고, 매 분기 함께 정하는 연료비조정단가도 최대 상한선인 킬로와트시당 5원이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이 상한이 적용된 것도 벌써 18분기 연속입니다. 요금이 오르지 않았다는 말은 곧 올릴 수 있는 한도조차 매번 끝까지 채우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가구가 실제로 얼마나 아낄지는 사용량과 계약 종별에 따라 달라져서 한 줄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번 분기에는 고지서에 새로운 인상 요인이 얹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난방과 가전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가계에는 분명 숨 돌릴 여유입니다.
원가는 올랐는데 상한에 막혔다
문제는 연료비입니다. 최근 실적 연료비는 단위 기준으로 549.64원인데, 요금의 기준이 되는 연료비는 494.63원입니다. 둘의 차이가 55.01원이나 벌어졌습니다. 이 격차를 제도대로 반영하면 킬로와트시당 7.3원 정도를 올려야 하는데, 조정 폭에 상한이 있어 이번에도 5원까지만 반영됐습니다. 필요한 만큼과 실제 반영분 사이에 2원 남짓의 틈이 남은 셈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가게에서 들여오는 재료값은 계속 오르는데 판매가는 몇 년째 그대로인 상황입니다. 손님은 반갑지만, 가게는 그 차액을 어디선가 메워야 합니다. 전기라는 필수재의 가격을 정부가 억누르는 동안, 그 차액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쌓이고 있습니다.
쌓여 가는 청구서, 한전 연결부채 210.7조
그 ‘어딘가’가 바로 한국전력입니다. 한전의 연결 기준 부채는 올해 상반기 기준 210.7조 원으로 집계됩니다. 하루 이자만 해도 만만치 않은 규모이고,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구조가 이어지면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납니다. 요금을 올리지 않는 대가가 한전의 장부에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부채는 결국 누군가가 갚아야 합니다. 한전이 스스로 줄이거나, 요금을 올려 회수하거나, 아니면 세금과 같은 다른 경로로 사회가 나눠 지게 됩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지금 고지서에 찍히지 않은 비용이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집은 무엇을 준비할까
현실적인 대응은 소박합니다. 첫째, 겨울철 누진 구간을 확인해 사용량이 급격히 튀는 시간대를 줄이는 것입니다. 둘째, 대기전력을 줄이는 멀티탭 정리나 고효율 가전 교체처럼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습관을 지금부터 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전기요금이 언젠가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계부에 미리 여유로 반영해 두는 것입니다.
동결이 반가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결이 곧 ‘공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가격표에 보이지 않을 뿐 비용은 이미 발생했고, 그 계산서는 시간차를 두고 도착합니다. 미리 알고 준비하는 가구와 모르고 맞는 가구의 체감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면, 전기요금은 우리 집 고지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용 요금은 공장의 생산 원가와 곧바로 이어지고, 그 원가는 다시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스며듭니다. 산업용이 8분기 동안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업에는 비용 안정이라는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한꺼번에 조정될 때 물가에 미치는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금이 얼마냐 못지않게, 어떤 속도로 어떻게 조정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정부와 한전이 그 로드맵을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도 앞으로 지켜볼 대목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여도 의외로 쏠쏠합니다. 매달 고지서의 사용량 추이를 한 번만 비교해 보셔도 낭비되는 구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래된 냉장고나 에어컨을 쓰고 계신다면 고효율 제품으로의 교체가 몇 년 단위로 보면 오히려 이득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자의 생각
저는 이번 동결을 두고 “다행이다”와 “불안하다”라는 두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한숨을 쉬는 가계 입장에서 전기요금만큼은 붙들어 주는 것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4분기, 18분기라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 이 약속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됩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이 부담이 눈에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눈에 보이는 인상은 싸울 수라도 있지만, 장부 속에 쌓인 빚은 어느 날 한꺼번에 청구서가 되어 돌아옵니다. 저는 한 번에 크게 오르는 것보다 미리 투명하게 공개하고 단계적으로 부담을 나누는 쪽이 장기적으로 서민에게 덜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동결이 위기를 미루는 선택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요금 및 투자 판단에 대한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요금은 계약 종별과 사용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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